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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5일 – 11월 25일까지

(Olot, Girona, 1914 – Toulouse, France, 1947)
Vallmajó는 Olot에서 태어나서 자라며 그곳의 유명한 자연을 학교 삼아 독학했고 곧, 바르셀로나로 향해 그곳에서 전위예술가들과 입체파 작가들이 자주 드나드는 “Els Quatre Gats” 의 오래된 정신에 깊이 빠진다. 그 당시 초기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그가 회화에 빠지게 된 동기와 진정한 열정만은 가늠해 볼 수 있다. 스페인 내전으로 그는 마드리드에 머물러야 했다. 공화당 선전 작업을 위해 일했었고, 곧 이베리아 무정부주의 연맹에 가입했다. 1939년 Argelés-sur-Mer 같은 파리 외곽 도시들을 거쳐 파리로 망명길에 오른다. 그렇게 그 시대에 중요한 열쇠였던 다른 망명한 예술가들, Jaime Sabartés 같은 작가 그리고 피카소를 알게 된다. 피카소와 그는 서로 초상화를 나눠가졌고, 피카소는 그의 작업을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도움을 줬으며 그리고 앞으로 그가 가야 할 예술의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했다. 파리에서 그는 초기에 분석적 입체파의 경향을 보였지만 곧 그것을 추상 기하학으로 바꾸었다. 그는 냉정한 예술가로써 인위적이지 않고 본질에 충실한 예술가이길 멈추지 않았다. 전위 예술의 흐름을 따라 Malevich, Kandinsky, Mondrian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파리 Castelucho Gallery의 Exposición de Pintores de la España Libre” 전에서 그의 neocubist을 소개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재료가 부족하고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 다녀야 하는 아픈 예술가였기 때문에 세계 2차 대전 때 파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Colliure와 Vermeille을 지나 Toulouse에 정착한 그는 “Naturalezas muertas” 와 “Paisajes del Mediterráneo”, 작품을 전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결핵에 시달리다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담요와 이불, 물감, 종이, 나무판과 박스와 100여 개의 작품들로 둘러싸인 헛간 안에서 잠들었다. 이것들은 지나치게 빨리 세상을 떠난 예술가의 자취이자 상징이고 물건들이었다. 현재 Museo Patio Herreriano de Valladolid 와 Museu Memorial de l’Exili de la Jonquera (Girona)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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